자연의 발명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는 위대한 그러나 잊혀진 과학자다. 세상 만물에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이름을 딴 것들이 많이 있다. 강, 산, 도시, 거리, 해류, 각종 식물, 동물, 광물 등 많은 것들이 훔볼트의 이름을 사용하여 불리고 있다. 심지어 달에도 훔볼트 바다라 불리는 곳이 있다. 훔볼트는 열대우림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화산을 올랐고, 극한의 시베리아를 가로질렀다. 훔볼트의 탐험은 동시대의 과학자, 시인, 정치인 모두를 고무시켰으며, 심지어 나폴레옹도 그를 질시했을 정도였다. 찰스 다윈은 훔볼트로 인해 비글호 항해를 시작했고, 시몬 볼리바르의 남아메리카 혁명은 훔볼트의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되었다. 괴테, 워즈워스, 휘트만의 시에 영향을 미쳤고, 『해저 2만 리』의 네모 선장은 훔볼트의 저서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미 1800년 즈음에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를 예측했고, 등온선을 고안한 인포그래픽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뮤어의 자연 보존에 대한 아이디어도, 소로의 『월든』도 훔볼트 없이는 나올 수 없었다. 그의 동시대인이 말했듯, 훔볼트는 “노아의 홍수 이후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이 책은 훔볼트의 발자취를 따르는 환상적인 여행 속에서, 이 잊혀진 영웅을 재조명한다. 훔볼트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시대를 너무나 앞서 나갔던 그의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는 누가 제시했는지 모를 정도로 상식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훔볼트는 자연을 상호연결된 전체로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급진적이었던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자연’을 발명한 것이다. <세상은, 자연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동시대인들이 ‘나폴레옹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로 여겼던 훔볼트는 당대 최고의 매력과 영감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훔볼트는 프로이센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세상의 원리를 깨치기 위해 특권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남아메리카로 5년간 탐험을 떠나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기어이 새로운 세계관을 품고 귀환했다. 훔볼트는 자연을 전 지구적 힘(global force)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여러 대륙들이 서로 대응하는 기후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자연력(natural force)들 간의 내적 연결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창안한 것이다. 자연은 하나의 생명망(web of life)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개념과 동일하다. 훔볼트는 기후를 대기·대양·대륙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시스템으로 이해한 최초의 과학자로,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최초로 경고하였다. 그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이슈는 환경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것을 강조하며, 노예제·단일재배(monoculture)·착취에 기초한 식민지는 불평등과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노아의 홍수 이후 가장 위대한 인간, 훔볼트> 이 책은 훔볼트라는 비범한 인물과 우리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추적한다. 훔볼트는 동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토머스 제퍼슨은 그를 ‘당대 최고의 걸출한 인물 중 하나’라고 불렀다. 찰스 다윈은 “훔볼트의 『신변기』를 읽는 것만큼 내 열의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고 한 것도 모자라 “훔볼트가 없었다면 비글호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종의 기원』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메리카를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시킨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는 훔볼트를 ‘신세계의 발견자’라고 불렀고,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훔볼트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깨달은 것이, 나 혼자 몇 년 동안 깨달은 것보다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훔볼트는 우리의 집단기억에서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다. 저자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하나는 훔볼트가 콜럼버스나 뉴턴처럼 신대륙이나 물리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세계관은 마치 삼투현상처럼 우리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왔고, 그 아이디어는 너무 자명하여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인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생겨난 반(反) 독일 감정이다. 불과 50년 전 수천 명의 인파가 거리를 행진하며 훔볼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던 클리블랜드에선 시민들이 독일 책들을 모아놓고 소각했으며, 신시내티의 공동도서관은 독일 책들을 제거했고, ‘훔볼트 거리’는 ‘태프트 거리’로 개명되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광풍 속에 ‘위대한 독일의 지성’에 대한 기억은 차츰 잊힌 것이다. 이 책은 훔볼트라는 존재를 다시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오늘날의 환경주의자, 생태론자, 자연주의 작가들은 훔볼트의 비전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예측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훔볼트는 이미 오래 전 인간의 비행(非行)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다고 경고했으며, 심지어 1801년 발표한 글에는 “인류는 이미 지구에 그렇게 했듯이, 먼 별을 유린하여 척박하고 황폐하고 만들 것”이라고 썼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훔볼트의 비전과 경고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훔볼트를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훔볼트라는 정신과 훔볼트라는 사람의 이면 사이> 한편 훔볼트는 양면성을 가진 인간이기도 했다. 식민주의를 맹렬히 비판하고 남아메리카의 혁명을 지지했지만, 두 프로이센 왕들의 신하였다.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와 평등 개념에 감탄하면서도, 노예제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항상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폭넓은 지식 때문에 존경받았지만, 날카로운 말솜씨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저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십여 개의 언어로 출판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큰돈을 벌지 못하고 가난하게 죽었다. 허영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남은 돈을 가난한 젊은 과학자에게 주려고 했다. 이 책은 훔볼트의 활약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 면모까지 아우른다. 훔볼트는 하나의 정신으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는 평생 자유를 열망하고 모험을 즐기되,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제약을 직면하고 수용한 고독한 인간이기도 했다. <훔볼트의 발자취를 따르는 환상적인 여행으로의 초대> 훔볼트는 베네수엘라 열대우림지역의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깊숙한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갔으며, 안데스산맥에서 활화산을 관찰하기 위해 고지대의 암벽 사이를 따라 기어들어가기도 했다. 예순 살이 되어서도 러시아 오지로 들어가 1만 6,000킬로미터 이상을 강행군했다. 이 책의 저자 안드레아 울프는 훔볼트의 발자취를 따라 베네수엘라의 열대우림, 침보라소 산, 독일 예나의 해부학 실험실, 훔볼트의 베이스캠프였던 에콰도르의 키도, 소로의 윌든 호수 등을 방문하고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아메리카와 러시아 등의 탐사 지도, 14컷의 컬러 도판, 68컷의 본문 도판 등을 활용하여 훔볼트의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훔볼트라는 위대한 인물을 하나의 생생하고도 감동적인 서사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노트 프롤로그 1부: 출발-떠오르는 아이디어들 1. 어머니의 그늘 2. 상상력과 자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훔볼트 3. 드디어 출발 2부: 도착-아이디어 수집 4. 남아메리카 5. 야노스와 오리노코 6. 안데스를 넘어서 7. 침보라소 8. 정치와 과학: 토머스 제퍼슨과 훔볼트 3부: 귀환-아이디어 분류 및 정리 9. 유럽 10. 베를린 11. 파리 12. 혁명과 자연: 시몬 볼리바르와 훔볼트 13. 런던 14. 다람쥐 쳇바퀴: 원심병 4부: 영향-아이디어 전파 15. 베를린으로 돌아가다 16. 러시아 17. 진화와 자연: 찰스 다윈과 훔볼트 18. 훔볼트의 코스모스 19. 시, 과학, 자연: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훔볼트 5부: 신세계-아이디어의 진화 20. 노아의 홍수 이후 가장 위대한 인물 21. 인간과 자연: 조지 퍼킨스 마시와 훔볼트 22. 미술, 생태계, 자연: 에른스트 헤켈과 훔불트 23. 자연 보존과 자연: 존 뮤어와 훔볼트 에필로그
안드레아 울프(역:양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