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투쟁’을 피할 수는 없다

  • 호이아나
  • 0
  • 1,052
  • 0
  • 0
  • Print
  • 글주소
  • 2026-06-01

.상간녀소송 2024년 정치인 이준석이 종편방송에 나와 뉴라이트를 맹비난한 적이 있었다. 뉴라이트가 과거사나 국가 정체성 이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왼쪽에 있다가 넘어와가지고 굉장히 뿌리가 약하니까 세게 하는 분들이다. 그러니까 역사밖에 건드릴 게 없는 거다.” “지금은 민생 이슈로 승부 봐야 되는데 역사 논쟁으로 승부 보려고 하는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같이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8 현재의 민생 이슈를 제쳐두고 과거 역사만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칭찬할 일은 못 된다. 하지만 이준석의 발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이다. 국가 정체성 서사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전장의 하나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극우 정치세력은 현실의 문제를 규정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기하는 준거점으로 국가 정체성 서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 비록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허구일지라도, 극우는 세계의 인식론적 지도와 구체적인 목표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반면 기득권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서사는 갱신되지 못한 채 탈역사적 시장주의와 개인화된 도덕주의에 침전되어버렸고, 급진좌파는 정치적 생존이 불투명할 정도로 무기력하다.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혀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서사 투쟁’, 정확히 말해 ‘기억과 서사를 둘러싼 투쟁’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이는 또한 공동체 기억과 서사 속에 담긴 가치질서, 곧 무엇이 더 정당한 가치인지를 놓고 끝없이 투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만 ‘서사과잉’은 피해야 한다. 서사과잉은 “사실에 바탕해서 서사를 엮어내는 게 아니라, 서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사실을 욱여넣는” 것이다.9 결국 서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서사과잉을 피하면서 서사 투쟁에 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국뽕’ 서사 같은 무조건적 긍정성이나 편집증적 음모론들은 피로와 냉소로 귀결하기 마련이다. 서사의 설득력은, ‘도파민 터지는 드라마틱함’보다는 기억과 서사에 담긴 가치질서에서 나온다. 서사가 정체성에 직결된 것일 때, 최근 미국이 보여주듯 치열한 논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의 발언은 금세 잊히고 사라졌지만, 뉴라이트의 서사는 20년째 호출되고 있다. 뉴라이트는, 정치적으로는 무능했을지 몰라도 정체성 서사가 사회정치 담론의 급소라는 사실을 어떤 우익보다 잘 알고 있었다.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captcha
자동등록방지 숫자입력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이은경쌤의 초등 글쓰기 완성 시리즈> 활용법 : 도서별 주제, '이런 친구에게 추천해요' 관리자 2024-07-25 12,525
공지 <이은경쌤의 초등 글쓰기 완성 시리즈> 가이드맵 및 교재 선택 가이드 관리자 2024-07-25 12,171
공지 교과서 및 지도서 자료실 이용 안내 +2 관리자 2021-02-25 18,300
공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동영상 강의시 저작권 안내 관리자 2020-04-03 22,120
1773 수원웨딩박람회, 수원결혼박람회 결혼 준비를 한 번에 확인하는 방법 곽시원 2026-05-31 1,109
1772 “뇌로 전이됐다” 박명수 전 매니저 한경호 충격 글... 알고 보니 투병 중인 어머니 심경 유효하타 2026-05-31 1,097
1771 "한동훈은 이제 아들 됐지" 다시 만난 찰밥 할매의 '대반전' 혼자림 2026-05-31 1,209
1770 부천웨딩박람회,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곽시원 2026-05-31 1,068
1769 인천웨딩박람회 vs 송도웨딩박람회, 어디가 좋을까? 강원내 2026-05-31 1,071
1768 악성 특이민원, 이제부터는 교장이 '거부 또는 종결' 온남이 2026-05-31 1,067
1767 다이렉트웨딩박람회, 합리적인 결혼 준비 방법 곽시원 2026-05-31 1,003
1766 "미국산 칩 필요 없다"… 中, 젠슨 황 보란 듯 다운그레이드 GPU도 차단 테스형 2026-05-31 1,083
1765 교육부 "고의·중과실 없으면 교사 면책"...교원들 "진전""부족" 아는게힘 2026-05-31 1,074
1764 정청래 운명 걸린 전북지사 선거… 이원택·김관영 “내가 진짜 민주당” 텔레미 2026-05-31 1,088
1763 진보 진영(이병도·김영춘)과 보수 진영(이병학·이명수)의 4자 구도 최소치 2026-05-31 1,027
1762 ‘북측 지령 혐의’ 민노총 전현직 간부 2명 무죄, 이유가…“역할 증명 안돼” 에이스 2026-05-31 1,087
1761 안갯속 충남 표심? '삼세판 지역'이 바로미터 자본가 2026-05-31 1,088
1760 그렇지만 안데스의 고지는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더파이팅 2026-05-31 1,072
1759 '홈플러스' 회생자금 놓고 균열…메리츠와 정면충돌 냉동고 2026-05-31 1,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