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투쟁’을 피할 수는 없다

  • 호이아나
  • 0
  • 1,269
  • 0
  • 0
  • Print
  • 글주소
  • 2026-06-01

.상간녀소송 2024년 정치인 이준석이 종편방송에 나와 뉴라이트를 맹비난한 적이 있었다. 뉴라이트가 과거사나 국가 정체성 이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왼쪽에 있다가 넘어와가지고 굉장히 뿌리가 약하니까 세게 하는 분들이다. 그러니까 역사밖에 건드릴 게 없는 거다.” “지금은 민생 이슈로 승부 봐야 되는데 역사 논쟁으로 승부 보려고 하는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같이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8 현재의 민생 이슈를 제쳐두고 과거 역사만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칭찬할 일은 못 된다. 하지만 이준석의 발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이다. 국가 정체성 서사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전장의 하나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극우 정치세력은 현실의 문제를 규정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기하는 준거점으로 국가 정체성 서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 비록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허구일지라도, 극우는 세계의 인식론적 지도와 구체적인 목표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반면 기득권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서사는 갱신되지 못한 채 탈역사적 시장주의와 개인화된 도덕주의에 침전되어버렸고, 급진좌파는 정치적 생존이 불투명할 정도로 무기력하다.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혀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서사 투쟁’, 정확히 말해 ‘기억과 서사를 둘러싼 투쟁’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이는 또한 공동체 기억과 서사 속에 담긴 가치질서, 곧 무엇이 더 정당한 가치인지를 놓고 끝없이 투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만 ‘서사과잉’은 피해야 한다. 서사과잉은 “사실에 바탕해서 서사를 엮어내는 게 아니라, 서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사실을 욱여넣는” 것이다.9 결국 서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서사과잉을 피하면서 서사 투쟁에 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국뽕’ 서사 같은 무조건적 긍정성이나 편집증적 음모론들은 피로와 냉소로 귀결하기 마련이다. 서사의 설득력은, ‘도파민 터지는 드라마틱함’보다는 기억과 서사에 담긴 가치질서에서 나온다. 서사가 정체성에 직결된 것일 때, 최근 미국이 보여주듯 치열한 논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의 발언은 금세 잊히고 사라졌지만, 뉴라이트의 서사는 20년째 호출되고 있다. 뉴라이트는, 정치적으로는 무능했을지 몰라도 정체성 서사가 사회정치 담론의 급소라는 사실을 어떤 우익보다 잘 알고 있었다.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captcha
자동등록방지 숫자입력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이은경쌤의 초등 글쓰기 완성 시리즈> 활용법 : 도서별 주제, '이런 친구에게 추천해요' 관리자 2024-07-25 15,873
공지 <이은경쌤의 초등 글쓰기 완성 시리즈> 가이드맵 및 교재 선택 가이드 관리자 2024-07-25 15,461
공지 교과서 및 지도서 자료실 이용 안내 +2 관리자 2021-02-25 21,247
공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동영상 강의시 저작권 안내 관리자 2020-04-03 24,888
1794 대법 "원청, 하청노조 교섭 의무 없다"…노란봉투법 소급 불가 다올상 2026-05-31 1,301
1793 진주웨딩박람회, 진주결혼박람회 지역에서 준비하는 결혼 정보 모음 곽시원 2026-05-31 1,304
1792 "차별화를 위한 굿즈, 협업, 시즌 한정 상품 등 마케팅적 요소를 통해 용지바 2026-05-31 1,304
1791 좌파 없는 나라서 살고 싶다 최준희도 '스타벅스 인증샷'.. 논란 속 마이웨이 국조투 2026-05-31 1,337
1790 요즘 사설들 양방 드립 치면서 환전 지연시키는 거 유행이냐? 오라메디 2026-05-31 1,379
1789 배우 김규리 북촌한옥마을 집 침입, 강도·폭행 40대 남성 붙잡았다 성현박 2026-05-31 1,353
1788 "투기판 열어놓고 이제 와 경고?" 그거같음 2026-05-31 1,339
1787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최승호 삼전 노조 위원장, 임단협 찬성 호소 갤럭시 2026-05-31 1,353
1786 청주웨딩박람회, 청주결혼박람회 실속 있게 결혼 준비하는 방법 은현수 2026-05-31 1,342
1785 더 큰 위협은 노노 갈등이 촉발할 사업 경쟁력 저하다. 외교통상 2026-05-31 1,362
1784 천안웨딩박람회, 천안결혼박람회 지역에서 준비하는 결혼 정보 모음 임채린 2026-05-31 1,293
1783 고교시절 여교사 신체 촬영해 공유했던 20대 졸업생 실형 맨트리컨 2026-05-31 1,350
1782 李 비판 하룻만에…이스라엘군 억류, 구호선 탑승 한국인 2명 풀려나 장기적 2026-05-31 1,372
1781 삼성 노노갈등에 ‘성장 양날개’ 균열…인재·투자전략 재설계 불가피 룩카리오 2026-05-31 1,313
1780 '붕괴 당일' 서소문 고가 밑 철로로 승객 탄 열차 59대 통과했다 다배움 2026-05-31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