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내리던 밤, 여의도 한복판서 울려퍼진 '님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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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09

.통영입주청소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줘."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넘칠 정도로 수북이 담고 있는 나를 두고 짝꿍이 한마디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한 치 앞도 예상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지금 나가서 언제 집에 돌아올 수 있는지, 무사히 들어올 수는 있는 건지. 우리는 잠옷 위에 두툼한 패딩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었는지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에나 통화가 연결되었다. 이 야밤에 걸려온 전화에, 엄마는 짐짓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것 같았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말하자 엄마는 황당해 하면서도 못 믿겠다는 눈치는 아니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당부를 거듭했고, 나는 별일이야 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도 엄마는 통화가 끝난 후 옆 방에서 자던 아빠를 깨웠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 아빠는 소위 말하는 586 운동권 세대다. 그 시절 뜨겁게 싸우며 어렵게 가꿔낸 민주주의가 다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맞닥뜨린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허탈함과 분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을 테다. 시민에게 총부리가 겨눠지는 시대를 다시 목격하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역사의 비극 앞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우리는 국회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진눈깨비가 처연하게 흩날렸고, 고요한 사위에 내 심장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 위로 헬기 소리가 '타다다다' 시끄럽게 허공을 울릴 때는 손발이 제멋대로 떨려오기까지 했다. 사람 한 명 다니는 이 없이 적막한 거리를 10분 동안 걸어가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혹여 이 자리에서 우리가 죽는다면, 그 죽음은 의미 있는 죽음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죽는다면 고양이는 엄마 아빠가 맡아서 키워주겠지,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던 순간,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계엄 철폐! 독재 타도!" 국회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더 커지고, 하나된 분명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 틈에 끼어들어 함께 목소리를 드높였다. 국회 정문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힘차게 팔뚝질했다. 군중 속으로 파고들자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뛰던 심장은 이제 다른 의미로 두근거렸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이 되어 주며 자리를 지켜나갔다. 대중교통도 끊긴 그 새벽에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술에 취한 아저씨, 백팩을 맨 학생, 마스크를 쓴 젊은 여성들, 카메라를 든 유튜버, 피켓을 든 시민... 각자의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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