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앉았네" 간첩을 만들고 피해자에게 화를 낸 판사
- 삼송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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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개인회생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여상규(1948~) 항목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제6공화국 시국사건 유죄판결로 공안정국 형성에 일조." 일조(一助). 도움을 보탰다는 뜻이다. 판사가 공안정국 형성에 '도움을 보탰다'. 이 점잖은 표현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의 29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공포, 그리고 재심 무죄가 나왔을 때 "웃기고 앉았네"라고 전화를 끊어버린 전직 판사 겸 국회의원의 뻔뻔함이다. 영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이 장면이 유독 이상하게 보인다.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내리고, 수십 년 뒤 재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더 나아가 그 판사가 국회의원이 되어 법사위원장 자리에 앉는 나라. 이것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한국의 일상인지. 삼수 끝에 서울법대, 그리고 판사의 길 여상규는 1948년 9월 15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났다. 삼수 끝에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군 복무 후 방일영 장학생 1기로 선발되어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10기를 수료한 뒤 판사가 됐다. 출발은 빛났다. 1981년, 서울형사지법 판사 여상규는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 1심 주심을 맡았다. 안기부가 고문으로 조작한 이 사건에서 그는 김정인에게 사형을, 석달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석달윤은 1998년 가석방됐고, 2009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이 인정된 것이다. 김정인 사건도 2010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조작된 사건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1989년 공안정국, 영화를 보는 것도 죄였다 1989년 여상규 판사의 법정을 거쳐 간 사건들을 보면 그 시대의 공기가 얼마나 숨 막혔는지를 알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가 영화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는 유죄를 선고했다. 여의도 농민시위 참가자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됐다. 유죄를 선고했다. 북한관련 서적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유죄였다. 걸개그림을 제작한 대학생도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유죄였다. 광주의 진실을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 농민이 광장에 나오는 것, 책을 만드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이 모든 것이 1989년 여상규의 법정에서 유죄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