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계약하면 더 좋대”라는 말에 흔들릴 것 같아서, 전국웨딩박람회 가기 전 규칙부터 만들었다
- 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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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5
“우리 박람회 가서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바로 계약할 거야?”
저녁을 먹다가 남자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조건 괜찮으면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는데, 말을 하고 나니 조금 불안했다. 전국웨딩박람회에 가면 하루 동안 여러 업체를 계속 보게 될 텐데 그 자리에서는 평소보다 판단이 빨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남자친구는 내가 원래 할인이나 한정이라는 말에 약하다고 했다. 억울해서 아니라고 했지만 지난달에도 필요 없던 주방용품을 행사 마지막 날이라는 이유로 산 적이 있어서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둘이 웃다가 전국웨딩박람회에서는 적어도 큰 금액이 들어가는 건 분위기에 휩쓸려 정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식탁에서 휴대폰 계산기를 켜고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 준비 예산을 다시 적어봤다. 웨딩홀, 촬영, 드레스처럼 아직 정확한 금액을 모르는 항목은 대략적인 한도를 잡고 그 이상이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일단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전국웨딩박람회에서 좋은 조건을 보더라도 전체 예산 안에서 봐야 한다는 게 우리 첫 번째 규칙이 됐다.
두 번째 규칙은 조금 더 단순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애매하면 그날 결정하지 않기.”
나는 마음에 드는데 남자친구가 고민하고 있거나 그 반대라면 설득해서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전국웨딩박람회에서 여러 상담을 연달아 받다 보면 누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건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정한 건 계약 전에 딱 세 가지만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금 결제해야 하는 금액, 나중에 추가될 수 있는 항목, 그리고 우리가 다시 생각할 시간이 있는지. 복잡한 체크리스트를 만들면 결국 안 볼 것 같아서 전국웨딩박람회에 가는 날에는 이 세 문장만 휴대폰 잠금화면에 적어두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남자친구가 종이에 크게 숫자 하나를 적어 식탁 위에 올려뒀다. 우리가 전날 정한 ‘이 금액을 넘으면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한다’는 기준이었다.
나는 그 종이를 접어서 지갑에 넣었다.
전국웨딩박람회에 가면 아마 예쁜 것도 많고 마음이 급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 우리가 가져갈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견적표나 질문 목록이 아니라 지갑 안에 접어둔 그 숫자 한 장이 될 것 같다.

